header

노회찬재단은 상세연보를 통해 故 노회찬 의원의 삶을 상세히 전달하고자 합니다.
고(故) 노회찬 의원과 관련된 자료나 기억을 갖고 계신 개인 및 단체의 경우, 관련 기록을 제공해주시면 검토 후 상세연보에 수록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를 통해 노회찬 및 노회찬을 중심으로 한 진보정당 운동의 기록에 관심 있는 분들께 정보 제공의 역할도 해나가고자 합니다.
소중한 추억을 간직하고 계신 분들의 많은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내용
1956년 ~ 1969년 02월

어린 시절

1956년 08월 31일

– 부산 동구 초량동 825에서 출생 (2남 1녀 중 장남)
– 원적은 함남 정평군 고산면 구창리 96, 본관은 강화(江華)
– 어머니 원태순의 고향은 함경남도 흥남, 교사를 하던 중 전쟁이 터져 1‧4 후퇴 때 거제도로 피난한 후 함경남도가 고향인 아버지 노인모를 만나 결혼
– 혈액형은 AB형
– 노회찬 이름 관련, ‘회’자는 항렬이고 ‘찬’자는 아버지가 좋아하던 시인 이찬(월북)에서 따왔다고 함

1957년 08월 31일

– 첫돌맞이 잔치

– 어린시절

1960년 04월 19일

– 어머니와 함께 서대문형무소, 작은외삼촌 원태진(元泰珍) 면회
: “저는 4.19와 5.16날이 다 기억나요. 저는 1960년 4월 19일날 서대문 형무소에 있었거든요. 내 나이가 5살 땐데. 엄마 따라 외삼촌 면회 갔다가 나오려 하는데 형무소 근처에서 데모가 벌어지는 바람에 못 빠져 나와서 쩔쩔맸던 기억이 나고요. 또 열차 타고 부산에 왔을 때 우리 집 근처에 도지사 공관이 시위 민중들의 돌팔매질로 파괴되고 우리 식구들이 덜덜 떨고 있던 장면이 기억나고요.”

1961년 05월 16일

– “5·16 때 계엄이 내려져서, 어머니하고 서울에 갔다가 오는데 어머니 팔뚝에 야간통행증 도장이 찍힌 일이 기억납니다.”(<오마이뉴스> 구영식 기자와의 인터뷰) “5.16쿠데타가 나던 날 7시에 통금이 내려서 차가 안 다니던 바람에 어머니가 팔뚝에 야간 통행증 도장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퍼슨웹>과의 인터뷰)

1963년 03월

– 부산 초량초등학교 입학

1964년 08월 31일

–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우리 집을 넓히는 공사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밤에 어머니가 내 손을 꽉 잡더니 내 이름을 부르면서 미안하고 했다. ‘오늘이 네 생일이다.’ 어머니도 제 생일을 잊고 있다가 저녁 때서야 안 거다. 우리 어렸을 때 생일은 미역국에 계란 후라이였다. 케익을 놓고 자르는 것은 없었던 시기다. 어머니는 ‘미안하다’면서 저를 데리고 1km를 걸어서 우리 집에서 제일 가까운 책방에 가서 사준 책이 <재미있는 발명 발견 이야기>였다. 그 책 한권이 저를 6년간 머리를 지배했다. ‘나도 발명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1966년 08월 04일 ~ 1966년 08월 13일

– 서울 여행 (일기장 기록)
: (8월 4일) 꽥! 하는 기차소리와 함께 나는 “맹호호”를 타고 “부산진역”을 떠났다. 내가 탄 기차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속도가 빠른 기차이며 부산에서 -> 대구 -> 대전 -> 서울로 달린다. 서울역에 내리자 무엇을 잊어버린 것 같이 허전하였다. 내일부터의 서울여행!
: (8월 7일) 나, 동생, 외숙모와 함께 덕수궁 구경을 갔다. 덕수궁의 성문인 “대한문”을 지나 석조전 박물관도 보고 미술관도 보았다. 그리고 중앙청, 청와대도 보았다. 오늘은 외숙모와 같이 가서 사진을 찍지 못했으나 다음에 외삼촌과 같이 갈 때는 사진도 찍고 재미있게 하루를 보낼 것이다.
; (8월 9일) 오후에 외삼촌, 이모, 동생 나와 같이 창경원에 갔다.
: (8월 10일) 강가에 가서 헤엄을 치다가 어떤 아이와 부딪혔다. 그래서 서로 말다툼을 하였다. 말다툼을 하다가 내가 사투리가 섞인 말을 하니 “야 이놈 봐라 경상도 사투리를 쓴다 이 경상도 문둥이 좀 봐라”하며 놀렸다. 나도 분을 참지 못해 그 아이를 마구 때렸다.
: (8월 13일) 맹호호로 서울을 떠났다. 외삼촌, 나, 동생. 대전 -> 대구 -> 부산에 도착했다. 번화한 서울에 있다가 부산에 오니 부산은 마치 촌 같았다. 어머니 아버지께서 우리들의 몸이 더 튼튼해졌다고 하셨다.

▲ 초량초등학교 4학년 때 일기장
1967년 01월 07일

– (일기장) 오늘은 어머니께서 기쁜 이야기를 했다. 내가 목소리가 나빠서 노래를 잘 못 부르니 바이올린을 켜라는 것이다. 저녁에 오신 아버지께 어머니께서 여쭈어보니 아버지께서도 무슨 악기든지 해야겠다고 말씀하셨다. 아직 사지도 않았지만 나는 퍽 기뻤다.

오류신고

의견제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