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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재단은 상세연보를 통해 故 노회찬 의원의 삶을 상세히 전달하고자 합니다.
고(故) 노회찬 의원과 관련된 자료나 기억을 갖고 계신 개인 및 단체의 경우, 관련 기록을 제공해주시면 검토 후 상세연보에 수록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를 통해 노회찬 및 노회찬을 중심으로 한 진보정당 운동의 기록에 관심 있는 분들께 정보 제공의 역할도 해나가고자 합니다.
소중한 추억을 간직하고 계신 분들의 많은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내용
1974년 04월 03일

– 유신반대 학내 시사 토론회, 수업 거부 및 농성 주동
: “아침에 등교하던 경기고 학생 하나가 교문 밖에서 어떤 대학생이 선생님 주라며 준 서류 봉투를 받아다가 교탁 위에 올려놓았다. 선생님이 오기 전에 학생들이 열어 보았다. 유신 반대를 선동하는 민청학련 명의의 유인물이었다. 노회찬은 교실 문을 잠가 선생님들의 진입을 막고 큰 소리로 유인물을 낭독했다. 학생들은 박수를 치며 동조했고 즉석에서 독재 정부를 규탄하는 시사 토론회가 열렸다. 학생들의 수업 거부와 농성이 학교 전체로 퍼져나가자 학교 측은 또 다시 휴교를 선포했다. 교실에 들어갈 수 없게 된 학생들은 노회찬을 중심으로 도서관에서 시사 토론을 이어 갔다.”
(※ 4월 3일 새벽 6시 미아리 대지극장 앞. 김병곤은 정태윤(서양사학과 3년), 박석운(법학과 2년), 노영만을 만나, 이들이 밤새워 몰래 등사한 선언문 등 유인물 1만2천 매가 담긴 라면 박스 3개를 받았다. “모두 몸조심하거래이.” 한마디 던지고는 택시를 타고 방학동 인쇄 장소로 옮겼다. 거기서는 한사회 후배인 주대환(종교학과 2년), 김석진(경제학과 2년)이 밤새워 하던 등사를 마쳐가고 있었다. 한편 이근성은 아침 9시 유인물 배포조를 구성하기로 한 서울대 3학년 송운학에게 전단, 격문 2천매를 전달하고 배포를 부탁했다. 7시경부터는 서울 시내 9개 고등학교 앞에서 민청학련 명의의 유신비판 유인물이 배포되고 있었다. 서울문리대 여학생들인 강인선과 홍경훈은 경기, 중동, 휘문고에, 김은희, 최정옥(독문과 3년)은 경복, 동성, 보성고에, 정진성(사회학과 3년), 김혜숙(심리학과 3년)은 대광, 신일고에서 배포했다. 일부는 청계천 상가 여자화장실에도 갖다 놓았다. 이것은 그동안 방학동 인쇄 장소에서 이근성 팀이 등사한 공동선언문 3천장, 민중의 소리 5백장, 결의문 2천장, 메시지 1백장으로, 어제 오후 민청학련의 물류기지 역할을 한, 광화문 우드스탁 레코드 가게로 가져와 이철과 여학생들이 묶음별로 포장했던 것이다. 일부를 고등학교 조직담당 구충서가 들고 나가 5개 고등학교에 분배하고, 나머지를 종류별로 15장씩 30개 뭉치를 만들었다. *출처 : <민청학련>,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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